
| Artist : 허니 패밀리(Honey Family) Album: Honey Family Release date : 1999.09.01 |
힙합이 처음 대한민국에 ‘수입’되던 1990년대, 힙합은 철저히 언더그라운드에만 머무르는 음악이었다던 오늘날의 막연한 오해와 달리 당시 인기를 끌었던 대중가요들은 ‘힙합’을 베이스로 둔 음악과 그룹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2년 ‘난 알아요’를 데뷔곡으로 들고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듀스(Deux)’, ‘철이와 미애’, ‘업타운(Uptown)’, ‘룰라’ 이상민의 ‘브로스(Bros)’ 등 수많은 그룹들이 등장했었다. 이러한 수많은 힙합그룹들의 군웅할거 중에도 (한국 대중문화 자체를 바꾸어버린 서태지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양대산맥으로 불린 두 그룹은 오늘날 YG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이 되는 ‘YG패밀리’와 본 앨범 리뷰에서 소개 할 ‘허니 패밀리(Honey Family)’였다. 마치 이탈리아 마피아 가문들처럼 90년대 오버그라운드 힙합 씬을 양분했던 이 두 ‘패밀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초창기 오버그라운드 한국 힙합 씬을 양분했다. 연습생들을 키워가며 연예기획사의 모습을 갖춰 간 YG패밀리와 대비되어 허니 패밀리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는 래퍼들을 모집하며 힙합 크루로서의 몸집을 불려갔다. 박명호, 광범, 미애(철이와 미애의 그 미애 맞다)로 이루어졌었던 허니 패밀리의 전신 ‘허니’는 미애의 탈퇴 이후 ‘리듬의 마법사’이라 불리는 ‘디기리’, 후에 ‘리쌍’을 결성하는 ‘길’과 ‘개리’, ‘주라’와 ‘영풍’, ‘수정’ 등을 영입하며 허니 패밀리를 구축하고 1999년 1집 ‘허니 패밀리’를 발매하게 된다.
허니 패밀리 1집의 전반적인 구성은 좋게 말하면 ‘다채로움’, 나쁘게 말하면 ‘잡탕’으로 느껴진다. 8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의 모든 랩 실력을 한 앨범 안에 보여주기 위해서는 각각의 멤버들이 최적의 랩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각자의 스타일이 적절히 뒤섞여야만 했을 것이다. 10곡이 넘는 앨범의 수록곡들은 저마다 다른 주제 의식과 가사 내용으로 곡이 진행되며 일정한 통일감을 가지지 않는다. 2010년대 초중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던 일리네어, 하이라이트레코즈, 저스트뮤직과 같은 레이블들이 일정한 주제의식과 컨셉을 가지고 컴필레이션 앨범의 구성을 꾸렸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는 힙합으로서의 멋을 함께 드러냄과 동시에 대중적인 코드에 맞는 곡도 있어야하는 고민 가운데 잡은 절충안으로 보인다. 인트로의 역할이 되는 ‘허니 패밀리 라구요’를 지나면 사이먼 도미닉이 쇼미더머니를 통해 샤라웃하고 허니 패밀리 출신의 길이 프로듀서 무대에서 공연을 하며 후세대에게 알려진 곡 ‘랩교 1막’이 본격적으로 앨범의 시동을 건다.
버벌진트와 피타입이 창조해낸 한국어 다음절 라임 방법론 이후 수많은 걸출한 래퍼들이 이를 갈고 닦으며 오늘날의 정교하고 섬세한 라임운용을 듣고 즐기는 한국힙합 팬들에게 있어 20년이 지난 아득한 랩 퍼포먼스는 다소 유치하고 원시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랩교라는 곡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즉흥교 랩교 Free Style 랩교’의 후렴을 계속해서 듣고 있노라면 정말로 주술의식에 현장에 던져진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가 반복되는 비트가 이어지며 긴장감을 만드는 그 순간, ‘즉흥교 랩교 프리스타일 랩교’의 후렴구가 귀를 때린다. 이어서 ‘난 모든 리듬/을 갖고 놀 수/있는 리듬의 마법사/디기리라 한다’며 박자를 이탈하는 듯 이탈하지 않고 엇박으로 자유롭게 비트 위에 랩을 올리는 디기리의 충격적인 벌스가 등장한다. 이후에도 ‘하나같이 똑같이 혓바닥을 꼬면서 그렇게 영어인 척 떠들어대고 있지’라고 당시 대중음악계의 어설픈 한영혼용과 엉터리 영어가사를 비판하는 영풍의 벌스와, 마치 부흥회를 이끄는 교주같은 주라의 ‘내가 너희들을 위해 주문을 외워주마 주라 주라 주라 주라 오 아’ 등의 가사는 듣는 이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며 완전히 트랜스상태로 빠져버리게 만든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지 난 정말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내게로 와봐’라는 명호의 마지막 벌스는 화룡점정을 이루며 리스너들을 허니 패밀리의 세계로 완전히 사로잡아 끌고 가버린다. 처음 노래를 들을 때에는 유치하고 어설프게만 들렸던 허니 패밀리의 랩교는 귓가에 몇 번 울리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듣는 이의 귀와 입술을 사로잡아버리는 사악하고 묘한 매력을 지닌, 무협지에 등장하는 ‘마교’와도 같은 곡이다.
랩교 이후에 이어지는 트랙리스트들은 더욱 충격적이다. 비슷한 분위기로 계속해서 강렬한 랩 음악을 들려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컨트리 음악처럼 어쿠스틱 기타로 리프를 시작하며 색소폰 세션을 더한 ‘일장춘몽’은 돈과 유명세를 쫓던 우리들이 그것들이 다 헛된 꿈, 일장춘몽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인생의 본질적 고민을 담고 있다. 내 자신이 살고싶은 대로 놔두지 않고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는 이 세상에 대한 비판, 많은 돈과 유명세가 결국에는 껍데기뿐이었음을 지적하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이루어진다. 바로 이전 트랙 ‘랩교’에서 ‘날 따라오라 날 따라오면 네가 고민하는 모든 것들을 알려주리라, 원하는 모든 것들을 알려주리라’고 말하던 교주들은 ‘내가 보기엔 모두 비슷해’라고 말하며 리스너들과 같이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하는 민낯을 보여준다. 모두 비슷하다고 비판하는 가사는 ‘서로가 잘난 인간들 왜 그렇게 재물만을 탐하려하나’며 기득권을 향한 날선 태도를 드러내지만 어찌 보면 이러한 가사는 그들을 한 때 동경하고 쫓아갔던 우리 역시 당신들과 다를 바 없이 ‘모두 비슷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장춘몽의 곡에 의해 분위기를 잡을 틈도 없이 곡은 다시 ‘왕따 될라’를 후렴으로 줄창 외쳐되는 곡 ‘왕따 될라’로 전환된다. 곡의 분위기가 전혀 상반되는 가운데 돈 자랑 허례허식을 자랑하는 자들을 비판하는 메시지 자체는 일장춘몽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 4번 트랙 ‘왕따 될라’에서 주목해볼 부분은 바로 ‘길’과 ‘개리’의 랩이다. 길은 투박한 톤의 목소리를 활용해 놀랍게도 음가가 섞인 ‘싱잉 랩’을 구사한다. 비록 모든 구간에서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나레이션을 섞으며 랩보다는 뮤지컬의 한 부분처럼 들리는 벌스를 짜놓았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려했다는 시도가 돋보이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개리’ 역시 허니 패밀리 시절부터 후에 본인이 정립하게 되는 고유한 스타일의 엇박자 플로우를 랩에서 묻어내어 보여주고 있다. 아직 톤이 정립되지 않아 조금 더 가볍고 뜬 소리로 랩을 하지만 ‘리쌍’이 결성되기 전 앳되었던 길과 개리의 초창기 랩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곡이다.
이어지는 노래는 슬픈 분위기의 러브송 ‘후에…’이다. 업타운이 연상되는 슬로우 템포의 비트 위에서 떠나간 그녀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가사를 위주로 곡이 진행된다. 앞서 진행되었던 곡들이 계속해서 분위기가 바뀌며 자칫 감상에 산만한 느낌을 주고 동시에 앨범의 정체성을 잘 알 수 없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노래 하나만으로도 당시 허니 패밀리가 왜 오버그라운드에서 최정상 그룹 중 하나로 군림했는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대한민국 가요의 문법을 잘 활용하며 만든 힙합 곡이다. 필자는 여기까지 노래를 재생하며 앨범을 감상하던 도중 문득 ‘명호’의 훅 메이킹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랩교’, ‘일장춘몽’, ‘왕따 될라’, ‘후에…’, 그리고 계속해서 마지막 곡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모든 노래 대부분의 훅을 명호가 담당했다는 것을 보며 굉장한 스펙트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니 패밀리 1집은 공연을 위한 뱅어 트랙에서부터 대중성을 고려한 러브송까지 각각의 곡 분위기에 맞는 적절한 가사와 리듬을 만들어내며 다채로운 구성을 지니고 있다.
앨범 중반부로 넘어가면 허니 패밀리 1집의 타이틀 곡인 ‘남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명곡 ‘My Way’를 샘플링한 것으로 유명한 이 곡을 통해 허니 패밀리는 공중파 방송까지 입성할 수 있었다. ‘이 세상 내 아버지가 살던 세상 이 세상 내 자식이 살아갈 세상’, ‘저기 저편 저 멀리서 다가오는 희망찬 함성소리’, ‘마치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거죠’와 같은 가사들을 통해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이제는 자신이 가정을 꾸려 자녀들을 키우며 힘들지만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가겠다는 가슴 따뜻한 내용을 가진 곡이다. My Way의 메인 멜로디를 아카펠라로 부르며 마무리되는 곡은 어느 한국인이 들어도 잔잔한 감동을 얻게 되는 부분으로써, 2Pac의 ‘Dear Mama’를 한국적으로 풀어낸 곡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무방하다.
이 후 앨범은 ‘둥둥’, ‘랩교 2막’, 위안부 할머니들의 스토리를 담은 ‘종군위안부’, 공연에서 즐기기 위한 ‘어쩌라구?’,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풀어낸 ‘엉터리 학생’, ‘신바람 허니박사’, 어려운 시대에 아픔을 버리고 사랑으로 모두 하나가 되자는 메시지의 ‘우리같이 해요’ 등의 트랙들이 이어지며 가벼운 느낌의 즐기기 위한 트랙들과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컨셔스 랩이 교차되면서 앨범은 마무리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랩교 2막’의 트랙을 지나면서 앨범을 감상하는 집중력이 현저히 저하되는 느낌을 받으며 나머지 트랙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1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15곡의 많은 트랙들을 일정한 주제 의식이나 장르에 대한 통일 없이 나열해놓은 듯한 앨범 구성 때문에 앨범에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감상을 멈추고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나머지 트랙들을 따로따로 들은 후에야 각각의 트랙에 대해 어느 정도의 느낌들을 받을 수가 있었다. 허니 패밀리 1집은 힙합의 고유한 성질과 대중성, 그리고 많은 멤버들 각각의 개성을 모두 조명하는 3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앨범의 통일성을 구축하지 못하고 모든 트랙들이 앨범 안에서 따로 놀게되는, 마치 EP 앨범 3~4장을 이어붙인 듯한 구성에 그치고 말았다. 때문에 방송 활동에서만 선보이는 타이틀곡과 후속곡만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나머지 수록곡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는 단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니 패밀리 1집은 당시 한국어 라임운용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실제로 멤버 박명호는 UMC/UW와 같이 ‘한국어 라임 무용론’을 주장했었다), 그리고 앨범 프로덕션 환경이 지금만큼 풍성하지 않았다는 점 등의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랩 퍼포먼스와 음악을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 한국 힙합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덧붙여 허니 패밀리에 참여했었던 ‘길’, ‘개리’, ‘미료’ 등의 멤버들은 다시 ‘리쌍’과 ‘브라운 아이드 걸스’로 활동하며 한국힙합을 대중화하고 힙합을 베이스로 한 많은 대중가요 명곡을 만들어내는 것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오늘날의 걸출한 래퍼들이 어린 시절 허니 패밀리를 보며 힙합의 멋을 느끼고 힙합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점에서 허니 패밀리가 남긴 업적과 유산들이 한국힙합의 당도를 올리는데 기여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