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PD는 98년 10월, PC통신을 통해 ‘조PD Rules’ 등의 곡을 업로드 하였는데, 이 곡들은 몇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한국 최초 인터넷 스타의 탄생이라 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99년 1월, PC통신을 통해 발표한 곡과 일부 신곡을 엮어서 발매한 것이 1집 ‘In Stardom’이고, 이는 한국 가요계 역사상 최초로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된 음반이다. 덕분에 당시에는 방송 무대 한 번을 못 했지만, 그럼에도 5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한 앨범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제2의 서태지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는데, 당시의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는 마냥 과장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첫 트랙 ‘조 PD Rules’에서는 ‘그런 가라오케에선 노래 안 불러/직업은 없어 와따시와 예술가야’ 등의 가사를 통해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그리고 DJ라 정확히 명하지는 않았지만, ‘저기 판 돌리는 아저씨 just pass me the MIC’ 라 말하며 DJ와 MC의 역할을 표현했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이야기 속으로’에서는 지나친 간섭에 대해서 ‘누구도 내 마음을 바꿀 수는 없어’라 일갈한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많이 놀았던 과거에 대한 회상, 주위의 편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럼 난 노래나 하련다 한평생’이라 말하며 본인의 인생에 대한 해답을 내리는 모습이다.
이어지는 ‘Break Free’ 또한 마찬가지다. (해당 트랙은 방송 심의를 피하고자 욕설을 드러낸 버전과, 욕설을 드러내지 않은 오리지날 버전으로 나뉘어져 수록되어있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음악에서는 왜 그렇지 못하는지를 꼬집으며 ‘사는 건 소비자가 알아서 해야 할 판단’이라 말한다. 그리고 ‘아니면 차라리 CD 앞에 써버리지 뭐. 이렇게, 욕 들어있음’이라는 가사로 이어지는데, 첫 문단에서 말했듯 해당 앨범은 한국 가요계 역사상 최초로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된 음반이다. 정태춘, 서태지 등의 투쟁으로 인한 사전 심의제도의 폐지 이후, 청소년 보호법이 시행된 이래 내려진 최초의 심의이다. 당시 조PD는 해당 앨범의 적법성에 대해서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한 후에 발매하였다고 회고했는데, 음악에서 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이뤄지기까지 선배 뮤지션들의 이러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Party On!’에서는 ‘이름은 조PD PD라면 프로듀서 나도 영어로 안 써보려 했지만 프로듀서라는 뜻이 달리 없더군’이라며 자신의 예명에 대해 설명한다. 본인만의 예명, 즉 a.k.a(As Known As)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물론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며 실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단이며, 조PD의 경우는 래퍼로서의 정체성 이상으로 프로듀서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해당 트랙은 앨범 후반부에 리믹스 트랙으로도 수록하면서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드러냈다.
5번 트랙 ‘비애’는 이승철이 부른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하였고 9번 트랙 ‘Real Love’에서는 이용의 ‘사랑과 행복, 그리고 이별’의 가사를 일부 차용하기도 하였는데, 현시점에도 한국의 힙합 트랙이 한국의 대중가요를 차용하는 것이 특이하게 여겨지는데, 99년에 이미 이러한 시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같은 시도는 앨범의 첫 트랙 ‘조PD Rules’의 훅에서 ‘이제껏 오래 했던 것들은 다 가라/세상이 변했으니 남는 곳들로 알아서 찾아가라’라 말했음에도, 일부 선배 뮤지션에게는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리스펙은 ‘2U, Playa Hataz’에서 이현도, 서태지, 현진영, 이하늘의 이름을 거론하며 ‘나는 한국 Rap의 제 2세대’라 자칭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자고로 MC와 DJ가 힙합의 시초 DJ가 판 돌리면 랩을 해 제쳐’라 말하며 힙합의 기본은 융화와 화합임을 강조하고, ‘내 리듬이 모두를 흔들 때까지 난 달려가리’라는 말로 힙합에 임하는 본인의 태도를 드러낸다. 2세대라 말을 하지만 아직 태동기나 다름없었기에 리스너나 지망생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드렁큰 타이거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또한 99년에 발매된 트랙이다.
물욕 가득한 여성들을 비꼬는 ‘썩은 XXX’ 또한 문제적이라 할 수 있지만, ‘아시아가 지배했으면 좋겠어’라 말하는 ‘용의 눈물’ 또한 위험한 주제라 할 수 있겠다. 비행 청소년 문제와 그것을 미디어의 책임으로 돌리는 행태를 꼬집으며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Break Free’ 같은 훌륭한 트랙도 있지만, 논리의 비약이라 할 수 있는 트랙 또한 일부 존재한다. 물론 2023년을 살아가는 20대 후반인 필자의 시선에서 이렇게 보이는 것이지, 99년을 살아가던 당시 20대 초반 청년 조충훈의 시선은 또 달랐을 수 있다.
해당 앨범의 다른 특이점 중 하나는, 일부 벌스나 훅이 싱잉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으로’의 경우는 ‘자유로와 이제 너는 날아 가슴에 묻힌 답답한 말 모두 잊었어 묻었어’라 말하며, 표기상 자유로워가 맞지만 일부러 발음을 비틀면서 라임을 형성하였고, 리메이크 트랙인 ‘비애’같은 경우, 원곡을 그대로 따라 부른 부분 이외에도, 싱랩 형태를 띈 훅을 따로 붙였다. 물론 당시에는 싱랩이라는 명칭은 없었지만, 이는 분명 오래전부터 존재해오던 작법임을, 멀리 미국의 예시를 들 필요도 없을 만큼 해당 앨범으로 증명 가능한 것이다.
물론 현시대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부족한 점이 많은 앨범일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도들이 가득한 앨범이었고, imf 외환 위기와 시대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득한 시대에 통렬한 메시지를 담은 앨범은 분명히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심의에 대해 도전하며 한글 작사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었고, 조금씩 자리 잡아가고 있는 힙합이라는 문화에 대해서 분명한 설명을 해줬다는 점 만으로도 1세대 한국 힙합의 상징적인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여러 사건과 논란으로 인해 몰락한 음악가로 비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의 가치는 폄하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