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 데프콘(Defconn)

Album: Straight From the Streetz EP

Release date : 2001. 07. 13

 

‘무한도전의 감초 멤버’, ‘1박 2일의 핵심 멤버’, ‘주간 아이돌의 진행자’, ‘정형돈의 단짝’ 등 다양한 예능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데프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첫 번째 정체성은 래퍼라는 사실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점차 잊히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그저 1세대 래퍼라는 이유만으로 잊히기에는 한국 힙합 씬에 너무나도 귀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첫 번째 EP 앨범 ‘Straight From The Streetz’를 통해서 우리는 한국어 다음절 라이밍의 초기 발전 형태를 파악할 수 있다. 한국 힙합의 라임 수준을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바꿔버린 버벌진트, 피타입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다음절 라임들로 리듬을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데프콘의 랩을 감상할 수 있다. 세 명 모두 1999년 PC통신 시스템 ‘나우누리’ 내에서 개설된 힙합음악 동아리 ‘SNP’의 멤버로서 한국어 랩 음운론을 연구하던 사람들이며, 이들이 각각 발매한 3개의 앨범(데프콘의 본 앨범을 포함해 버벌진트의 ‘모던 라임즈’와 피타입의 ‘헤비 베이스’) 모두 그러한 연구로 인해 나타난 업적이기 때문이다.

앨범의 정체성은 사운드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주제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굉장히 독특하면서 다채롭다. 전통 관악기 소리를 샘플링한 첫 트랙 ‘십자군’은 무협지의 한 부분을 보는 듯한 비장미가 느껴지는 가사로 시작된다. ‘잘못된 역사를 돌려놓기 위해 도려내기 위해 저 하늘의 안내로 놓았던 칼을 차네’, ‘계속되는 암행과 거리의 허울을 베매 이제 곧 새날을 찾네’의 후렴은 불의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각오를 다지고 나아가 다시금 올바른 것들을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주제 의식이 허공에 흩날리지 않는 것은 가사 마디마디를 가득 채운 수준 높은 라임들 때문이다. ‘다툼으로/한숨으로’, ‘얼만큼이나 견딜 거라/뭘 더 얼마를 믿나’, ‘어두운 밤이 와 저무는 날이다/서두른 나지만 전투는 아쉽다’, 마지막 트랙 ‘편지’에서의 ‘당신께서 바라시던 그 분의 지도로/ 다시 깨져가라시던 두 분의 기도로’ 등의 다음절 라임은 2001년임을 고려했을 때 상당한 수준의 스킬이라고 볼 수 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버벌진트와 피타입의 기량에도 절대 밀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 중에서도 라임을 구성하는 스킬은 최고 중의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십자군’에서 보여준 다음절 라임을 더욱 촘촘하게 드러내며 랩의 퍼포먼스를 한 단계 더 높여 보여주는 ‘No.1’, 어쭙잖은 태도의 가짜 래퍼들을 일갈하는 ‘Kill Dat Noise (Feat. P-Type)’, 경쾌한 피아노 루프를 샘플로 ‘제대로 된 힙합 세계를 보여줄 테니 신나게 놀자’는 메시지를 담은 ‘No Joke (Feat. Verbal Jint)’, 클럽에서 만난 여성과의 하룻밤을 그린 ‘그의 여름은 화끈하네’, 자신을 향한 헌신적인 부모님의 사랑과 신앙심을 드러낸 ‘편지 (Feat. Rich From R-Crew)’ 등의 수록곡들을 통해서 다채로운 주제들을 담아내는 데프콘의 스토리 텔링 능력과 앨범 프로듀싱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믹싱 상태가 좋지 않아 전반적인 앨범의 질감이 다소 투박한 감은 있으나 2001년의 인디펜던트 힙합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크게 감상을 해치지는 않는다.

흔히들 한국 힙합 내에서의 음운론은 버벌진트와 피타입이 완성했다고들 말한다. 허나 이 앨범을 통해서 우리는 이에 한 사람 더, 데프콘의 이름을 추가하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B급인 척하는 S급’이라는 말이 있듯, ‘형돈이와 대준이’의 음악은 대체로 재미와 코믹한 이미지를 위한 것이지만 그 속에는 데프콘의 뛰어난 라임 운용 능력이라는 곧은 심지가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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