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rtist : Kiravi(키라비) Album : nightmare Release date : 2021.06.21 |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본 작품은 고사하고, 키라비(Kiravi)라는 아티스트 자체를 생소하게 여길 수 있다. 그녀는 16년도쯤에 사운드클라우드 씬에 모습을 나타냈으며,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부터 활동을 시작한 스월비(Swervy)와도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링크) 이후에도 17, 18년도에 각각 한 장의 EP를 발표했지만, 안타깝게도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온바, 최근에는 파리꼬마(ppariskkoma)라는 신예와 함께 ‘Airpods’라는 싱글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구사하는 위스퍼 보이스(Wisper Voice)라는 발성법 또한, 국내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의 다오코(Daoko)라는 여성 아티스트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해당 발성법은, 지금이야 일본의 마이너 문화에서는 하나의 기조로 자리잡았지만, 한때는 다오코만의 독자적인 무기였다. 집안에서 몰래 녹음하기 위해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위스퍼 보이스라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속삭이듯 작은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키라비의 음악 또한 이러한 발성법을 바탕으로, 그에 어울리는 외로움의 정서가 주가 되었다. 그것은 본 작품, 그리고 이전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특징이다.
광기 어린 집착이 돋보이는 ‘죽어도 넌 나의 boyfriend’, 그러나 앞에서는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짝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투명인간’. 이러한 트랙 연결은 확실한 대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해당 앨범은, 후반부에 다시 한번 ‘FUCK BOY!’와 ‘자기소개서’라는 전혀 다른 성향의 두 트랙의 대비를 보여준다.
위스퍼 보이스라는 발성법이 ‘죽어도 넌 나의 Boyfriend’나 ‘FUCK BOY!’처럼 강한 어조의 곡과 어우러지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잘 묻어났다. 특히 ‘FUCK BOY!’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욕을 뱉는 모습은, 앨범의 다른 트랙들 속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화자의 모습과 대비되어 더욱 극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그렇지만, 이러한 발성법이 가장 두드러지는 트랙은 ‘디트리터스’와 마지막 곡 ‘자기소개서’와 같은 내향적인 가사의 곡들이다. * 야나기 나기(Yanagi Nagi)의 ‘アクアテラリウム(Aqua Terrarium)’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듯 보이는 ‘디트리터스’에서는 바다속에 떠다니는 부유물(정확히는 플랑크톤 같은 해조류)처럼, 자리잡지 못 하고 떠다니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나는 네가 모르는 사랑을 혼자 해’라는 가사가 인상적인데, 짝사랑이라는 세글자조차도 똑바로 말 못하고 애둘러 표현하는 것으로, 내향적인 가사의 끝을 보여준다.
* 잔잔한 내일로부터(凪の明日から)라는 에니메이션의 주제가로 쓰인 해당 트랙의 가사를 보면,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많다. 단순히 소재가 겹친 것일지도 모르지만, 키라비라는 아티스트의 비쥬얼적인 모습이나 발성법 등, 일본 서브컬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링크)
‘자기소개서’에서는 ‘혼자 강해져야’한다 말을 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잠시만 가지 마’라 말하며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난 성공에 미쳐있어’라는 말로, 열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앨범의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키라비라는 아티스트에 대해 가감 없이 드러내는 트랙을 마지막에 배치한 것이, 해당 앨범 이후에 발매된 곡들에서도 본인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끔 하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뿐 아니라, 키라비의 커리어를 들여다봤을 때 가장 인상적인 트랙이었다.
이 앨범의 제목인 ‘nightmare’라는 단어를 토대로 유추하건대, ‘너’가 떠나가는, 혹은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악몽으로 여긴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 모든 대상이 연모의 대상, 혹은 연인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나를 닮은 너’ 같은 경우는 가족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맞는 것 같고, ‘자기소개서’ 같은 경우는 절친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즉, 각각의 트랙 속 ‘너’는 동일한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nightmare’라는 앨범 제목은 여러모로 영리했다. 마약을 소재로 한 ‘FUCK BOY!’를 듣고, 누군가는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를 궁금해하겠지만, 앨범 제목부터 꿈이라 명시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디트리터스’에서는 제목부터 비유가 가득하며, ‘잠에서 깨면 너를 잃을까 봐’라는 가사를 통해 꿈이기에 가능한 비유임을 다시 한번 명시하고 있다.
해당 앨범 이전의 키라비의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거의 모든 곡이 사랑을 주제로 하고있었다. 좋게 말하면 색채가 뚜렷했고, 나쁘게 말하면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한정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해당 작품에서는 이전보다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이야기들을 풀어냈고, 그것은 이후 발매된 ‘Airpods’같은 곡에서 본인 내면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뱉어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비로소 본인의 무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깨달은, 과도기를 거쳐 더욱 성장해야 하는 시점에서 본인만의 캐릭터를 확고히 다지는 앨범이었다 할 수 있겠다.
키라비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kiravikira
